이 춘향이 맘만못헐 거이 머시여 음마 음마 저어 말 독허고 찰방지게 허는 것 잠 보소 니 맘이 춘향이맘보담 더헌께 니넌 천리길 찾아나서고 춘향이야 못 그런 것 아니겄냐 아이고 이 미친년아 이렇게 무작정 찾아갔다가 심 사령관이 싫어하면 어쩔 것이냐는 말은 꺼낼 수도 없었다 이미 굳어질 대로 굳어진 순덕이의 결심 앞에서 그 말은 의기만 꺾이게 할 뿐 마음을돌리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려 니맘이 그러먼 가야겄제 죽는 것보담이야 나슨 일잉께 그리 찾어갈 디나 있는 니가 부럽다 무슨 소리다냐 무신 소리기넌 하섭씨가 워디 있는지만 알먼 나도 니허고항꾼에 떠뿔 것인디 말이여 금메 그리 허먼 동무삼아 을매나 좋겄냐 문딩이 가시네순덕이는 나흘 전에 모습을 감추었고 정님이는 그날부터 나주댁에게 시달림을 당하게 되었다 정님이는 흩어지지도 않은 책들을 다둑거려가며 정하섭이가 어디 있는 줄 알았다면 정말순덕이 따라 봇짐을 쌌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너무나 뜻밖인 순덕이의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촉발된 감정일 뿐이었다 그가 작년 시월 난리통에 좌익으로 나타났을 때부터 벌써 엇갈린 인연이었고 아버지가 자수를 해서 보도연맹 위원장이된 지금에 와서는 완전히 막음한 인연이었다 정하섭이가 아버지의 행위를 용서할 리가 없었고 아버지가 정하섭을 받아들일 리도 없는 일이었다 자신은 그 틈바구니에서 속절없이정하섭에 대한 그리움을 지워갈 도리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보도연맹 위원장이 되자그리도 뻔질나게 드나들며 비릿한 웃음을 능글능글 묻혀내던 솥공장집 아들 윤태주도 깨끗하게 발을 끊고 말았다 인물이나 사람됨됨이가 정하섭하고는 댈 것이 못되지만 그나마 재산이 많으니까 어찌 마음을 줄까도 싶었는데 그것마저 빗나간 것이 틀림없었다 좌익이라면 이를 갈아대는 그가 좌익에서 몸돌린 아버지한테 오만정이 다 떨어졌을 것은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보도연맹 위원장이란 자리가 뭐 밥생길 것 있다고뻔질나게 바깥출입만 하고 다녔다 정하섭을 생각하면 정님이는 안타까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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